뙤약볕이 내리쬐는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 계단. 이주민들이 층층이 앉아 있고 밀짚모자를 쓴 한 남성이 마이크를 잡고 서 있다. 여느 집회의 모습이지만, 마이크를 잡은 사람의 말이 쉼 없이 쏟아진다는 점에서는 교회 집회를 닮기도 했다. 마이크를 잡은 이는 박순종(63) 대구이주민선교센터 목사다.
박 목사는 2003년부터 대구이주민선교센터에서 이주민을 만나고 있다. 센터를 찾는 이들 가운데는 베트남 출신 이주민이 많다. 박 목사는 이들의 임금체불과 산업재해 상담은 물론, 체류, 의료, 가족 문제까지 살피고 해결을 돕는다.
20년 넘게 이주민 곁을 지키면서 박 목사는 자신이 생각하는 ‘선교’도 달라졌다고 했다. 교인을 만드는 것보다 이주민이 겪는 착취와 차별,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가 복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Q. 대구이주민선교센터는 언제, 어떻게 시작됐나.
-2003년 11월 11일 설립했다. 그전에 대구의 외국인상담소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그러면서 베트남 사람들을 비롯한 이주노동자를 많이 만났다.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 여성이나 노숙자들이 겪는 어려움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심각한 아픔과 문제를 이주노동자들이 겪고 있다고 느꼈다. 봉사하면서 만나는 사람도 점점 많아졌다. 이후 뜻이 맞는 목사와 함께 대구이주민선교센터를 만들었다.
Q. 선교센터를 운영하면서 만난 이주민들의 상황은 어땠나.
-당시에는 이주노동자 문제가 중심이었다. 산업재해나 사망 사고도 심각했다. 임금체불과 산업재해 문제가 너무 많았다.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욕하고 때리는 일도 있었고, 여권이나 외국인등록증을 빼앗아 가는 경우도 많았다. 2004년 중국인 이주노동자 고(故) 정유홍 씨 사망 사건에 대응하는 활동도 여러 달 이어졌다. 그런 일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을 만나고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Q. 왜 ‘선교센터’였나.
-목사로서 이 사람들을 만나고 돕고 싶었다. 당연히 선교의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교인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 겪는 아픔, 착취, 차별, 죽음의 문제를 풀어주는 것이 곧 복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내 생각도 그렇게 변해갔다.
Q. 특히 베트남 출신 이주민과 오랫동안 활동해왔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여러 나라 사람을 많이 만났다. 언어 문제도 있고, 한마디라도 더 배워 제대로 소통하려면 한 사람이 여러 나라 출신 이주민을 모두 담당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활동하는 목사들이 자연스럽게 국가별로 역할을 나눴다. 나는 베트남을 맡았다.
2006년 10월, 한국에서 일하다 베트남으로 돌아간 노동자들의 모임이 하노이에서 만들어졌다. 첫 모임에는 70~80명 정도가 참석했다. 그래서 다른 지역 목사님들의 지원을 받아 주기적으로 베트남을 방문했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관계를 계속 이어왔다.
Q. 일요일에 선교센터에서 열리는 예배에 한 번 참석한 적이 있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노동 상담을 받으려는 이주노동자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노동 상담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이주노동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있다. 몇 시에 출근하고, 언제 밥을 먹고, 어떻게 일하고, 언제 퇴근하고, 월급을 언제 받는지 상담해야 노동자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그냥 ‘이 사람은 어느 공장에서 일한다’고 아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그래서 이주민의 실제 생활을 알려면 노동 상담을 꼭 해야 한다.
상담해 보면 최저임금이나 주휴수당 문제가 여전히 있다. 최근에도 베트남 출신 여성 노동자들이 주휴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 한 사업장에서 여러 사람이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데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사례를 보면 노동 상담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다.
Q. 이주민을 둘러싼 문제가 점점 사회적 갈등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요즘은 생각보다 혐오와 조롱, 차별이 심하다는 것을 느낀다. 특히 인터넷 댓글 등을 보면 무서울 정도라고 느낄 때가 있다. 이주노동자가 자기 일자리를 빼앗으러 왔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건설 현장에서는 그런 갈등이 더 직접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주민이 한국에서 살아간다고 해서 한국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오해를 풀어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이주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교육받는 것도 필요하다. 무조건 더 많이, 더 빨리 일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면서 일해야 한다. 천천히 안전하게 일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결국 그렇게 해야 이주노동자 자신도 덜 힘들고, 노동조건도 함께 나아질 수 있다.
Q. 지금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요즘 상담 중에는 병원 진료를 지원하는 일이 가장 많다. 나는 그동안 베트남 사람들을 주로 담당했는데, 센터 주변을 보면 베트남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우즈베키스탄, 인도, 스리랑카,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도 아플 수 있고 아이들도 있을 텐데, 아프면 어디에서 어떻게 도움을 받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미등록 이주민들이 있다. 적어도 이런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진료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단순히 도움을 준다는 차원을 넘어, 여러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