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대구에서 시작된 10월항쟁이 올해로 8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구에서는 추념식과 학술대회, 헌정 콘서트, 문화예술제, 전국노동자·민중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10월항쟁을 단독 의제로 다룬 국회 토론회도 처음 개최됐다. 대통령의 추도사가 나왔고, 약 2,400명의 시민이 기념사업에 후원자로 참여했다.
이러한 기념사업을 이끌어온 사람은 박석준 10월항쟁 80주년 행사위원회 집행위원장이다. 지난해 79주년을 앞두고 10월항쟁 관련 활동을 지속할 상설 조직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를 바탕으로 올해 80주년 기념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박 집행위원장은 10월항쟁이 노동·시민사회·문화예술계 등 다양한 주체를 연결할 수 있는 의제라고 봤다. 올해 사업을 통해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고도 했다. 이제 그의 고민은 항쟁의 역사를 오늘날 시민들의 삶과 연결하고 지속적인 운동으로 이어가는 데 있다.
Q. 10월항쟁 8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면서 어떤 가능성에 주목했나.
- 79주년을 앞두고 10월항쟁 관련 상설 조직을 만들자는 논의가 있었다. 80주년이 되기 전에 조직을 만들지 못하면 제대로 된 기념사업을 치르기도 어렵겠다는 판단이었다. 10월항쟁은 대구에서 가장 넓은 연대체를 구성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정파나 조직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결합할 수 있는 의제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여성운동 등 기존 부문운동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 10월항쟁 사업이 아닐까 생각했다.
Q. 올해는 다양한 단체가 참여해 여러 형태의 기념사업을 진행했다.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나.
- 시민들에게 10월항쟁을 많이 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너무 모른다. 기존에 진행하던 위령제나 시도민대회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기념사업을 질적으로 발전시키고 규모도 키우고 싶었다. 그동안 10월항쟁과 관련한 사업은 특정한 시기에 강연이나 집회를 진행하는 정도였다. 연중 사업을 진행한 경험이나 축적된 자료도 부족했다. 사실상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했다.
기존에 진행하던 문학제나 예술제도 각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하나로 묶어내고 싶었다. 시민들이 봤을 때 10월에는 이런 예술제도 있고, 학술제도 있고, 대중 행사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시민들이 쉽게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Q. 올해 기념사업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 추념식이다. 가장 공을 많이 들였다. 올해는 시민들에게 인정받고 정부 기관으로부터도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 대통령의 추도사가 나왔다는 데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둔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10월항쟁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이 의미 있었다. 추념식을 준비하면서 사회자 섭외부터 마지막 시 낭독까지 신경을 많이 썼다. 공식적인 행사이면서도 항쟁의 역동성을 드러내고 싶었다. 헌정 콘서트도 고민이 많았던 행사다. 처음에는 젊은 사람들을 어떻게 불러 모을지 고민했지만, 준비하면서 단순히 관객을 많이 모으기보다는 10월항쟁을 널리 알리고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자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접점을 찾으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추념식과 콘서트가 앞으로도 계속됐으면 좋겠다.
Q. 대통령의 추도사뿐 아니라 10월항쟁을 단독 의제로 한 국회 토론회도 처음 열렸다. 이후 변화가 있었나.
- 국회 토론회에는 국회의원 네 명이 모두 참석해 축사를 했다. 10월항쟁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토론회 이후에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정당이나 대구시에서도 자료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행정안전부와 대구시가 올해 추념식에 명의 후원을 하기도 했다. 재정 지원은 없었지만 공식적으로 인정받는다는 의미가 있었다. 시민들의 힘으로 기념사업을 치러냈으니 이제는 정부나 대구시에서도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고 말할 근거가 생긴 것이다. 다만 특별법 제정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제주4·3이나 여순사건도 수년이 걸렸다. 당장 법을 만들겠다고 조바심을 내기보다는 이제 국가와 정치권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계속 환기하려 한다.
Q. 시민들의 후원도 예상보다 많았다.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나.
- 현재까지 후원자가 2,400명 정도 된다. 처음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숫자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출연 전에는 300여 명이었는데, 방송 이후 2,000명 정도가 늘었다. 그저 영향력 있는 방송에 출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이 대구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도 있고 화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방송을 통해 '대구가 이런 도시였구나', '이렇게 애쓰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울림이 있었던 것 같다. 대구가 원래 이런 곳인지 몰랐다는 댓글도 있었다. 시민들이 그런 부분에 공감해 준 것이 크다고 생각한다.
Q. 앞으로 어떤 활동을 이어갈 계획인가.
- 가칭 10월항쟁 기념사업회 같은 조직을 설립하자는 목소리가 있다. 이번 사업을 하면서 10월항쟁을 전담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전문성을 갖추고 법적·행정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다만 구체적인 설립 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연말에 사업을 평가하고 80주년 행사위원회를 해단하면서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본다. 기존 시월항쟁시민연대는 시민사회 운동을 이어가고, 재단은 진상 규명과 기념사업을 전문적으로 추진하는 방식으로 각자의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Q. 10월항쟁을 기억하는 활동이 오늘날 지역사회와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 단체가 중심이 돼서 의제를 제시하고 운동을 주도하는 시대는 일정 정도 지났다고 본다. 이제는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지원하고 협력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우리가 주도하려는 게 아니라 시민들의 참여를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여러 행사를 기획한 것도 같은 이유다. 열 가지 행사가 있으면 그중 하나라도 마음에 드는 것이 있을 수 있지 않나. '이건 한번 가보고 싶네' 하는 식으로 참여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 중요했다. 10월항쟁 당시에도 쌀과 생존의 문제가 있었고, 지금도 물가와 민생의 문제가 있다. 80년 전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지금 내 삶도 바꾸는 일이라는 효능감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역사를 공부하는 것을 넘어 현재의 과제를 함께 발굴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운동의 세대 교체도 필요하고, 젊은 활동가와 시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이번 80주년 사업으로 하나의 가능성은 확인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게 완결은 아니다. 결국 우리가 기댈 것은 시민들의 참여와 역동성밖에 없다. 시민들과 동떨어져 우리만의 길을 가다 보면 정치도 운동도 도태되기 마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