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구여성의전화(053-471-6484~6486)는 여성폭력 피해경험자를 지원하는 여성인권운동단체다. 단체는 여성폭력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 일상을 회복하는 과정을 함께한다. 경찰 조사 동행이나 재판 모니터링에 나서기도 하고, 법률·의료·심리 지원을 연결한다. 필요하면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피해자가 처한 문제를 공론화한다. 이들은 일상을 바꾸는 성평등 의제를 확산하고, 여성폭력 관련 정책을 제안·감시하며 더 나은 사회를 꿈꾼다.
대구여성의전화에는 대표를 포함해 19명의 상근활동가가 있다. 대구지역 여성단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부설기관으로 통합상담소 ‘피어라’, 대구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이다음’을 운영한다. 통합상담소에서는 스토킹 피해자 보호·지원사업도 한다. 매주 월요일 오후에는 무료 법률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정기후원자는 500여 명으로 책읽기소모임, 수다모임 등 회원 모임도 운영한다.
윤수빈 사무국장은 단체의 여러 사업과 행사를 기획하고, 조직 운영과 인사, 회원 관리 업무 등을 맡으면서, 피해자 상담 업무도 한다. 그는 “여성폭력은 상담소를 찾은 일부 피해자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며 “피해자 지원은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Q. 대구여성의전화에서는 언제부터 활동하셨나요?
- 2021년 5월 대구여성의전화에 들어왔어요. 디지털성폭력 피해 지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나온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활동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직접적인 계기는 디지털성폭력 문제였어요. 그전에는 제가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 정체화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여성에게 불평등한 일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나는 페미니스트까지는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여성 문제를 이야기하면서도 자꾸 양쪽의 균형을 맞추려고 했고요. 여성폭력과 여성혐오 문제가 계속 공론화되는 과정을 보면서 점차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온라인 서명에 참여하거나 여성혐오적인 방송과 콘텐츠를 발견하면 글을 남기는 등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했어요. 마침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였는데, 일반적인 직장에 들어가 남성 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도 됐어요. 그러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활동을 직업으로 해보면 어떨까’, ‘어쩌면 내가 활동가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지원하게 됐죠.
Q. 디지털성폭력, 스토킹, 교제폭력 등 새로운 형태의 여성폭력이 나타나고 있는데, 대응에 어려움은 없나요?
- 디지털성폭력은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고, 피해를 더 쉽고 광범위하게 일으키는 방식이에요. 스토킹과 교제폭력도 과거에는 사랑이나 집착으로만 여겨졌던 행동을 폭력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고요. 새로운 폭력의 양상에 맞는 제도는 당연히 필요합니다. 디지털성폭력은 가해자뿐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 운영자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하고, 인공지능 기술이 성착취에 활용되지 않도록 막는 수단도 마련해야 해요. 성폭력과 가정폭력, 스토킹, 디지털성폭력 등이 각각 다른 법과 제도로 나뉘어 있지만 이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어요. 현장에서 피해자를 지원하다 보면, 현재 시스템이 이런 문제를 구조적으로 살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디지털성폭력과 스토킹은 새로운 범죄로 보이지만, 오래된 여성폭력이 새로운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기도 해요. 여성폭력은 어떤 개인이 갑자기 일탈해서 저지르는 범죄만은 아닙니다.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문화와 여성에 대한 차별이 사회에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폭력이에요.
Q. 활동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이나 벽도 있을 것 같아요.
- 단체에서 캠페인을 진행하거나 집회에 참여할 때 ‘페미니즘’이라는 말에 꽂혀 다가와 시비를 걸거나 모욕적인 말을 던지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전혀 궁금하지 않은 자신의 생각을 굳이 드러내고 가는 모습을 보면 황당하고 성가시죠.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 때문에 활동하기 어렵거나 두려운 것은 아니에요. 다만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긴장감은 있어요. 여성들만 있는 단체라고 만만하게 생각해 저러는 것은 아닌가 싶어 화가 나기도 하고요.
피해자와 경찰서에 갈 때도 비슷한 긴장감을 느껴요. 어떤 말을 듣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피해자도, 함께 가는 활동가도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물론 피해자를 잘 지원하려고 노력하는 경찰관들도 많아요. 하지만 여성단체가 경찰 조사에 동석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사 동석은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인데도 여성단체가 함께하는 것을 싫어하는 태도를 보일 때가 있거든요.
Q. 활동하면서 보람을 느꼈거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 최근 피해경험자 한 분이 단체로 후원을 해주시면서 편지를 보내주셨어요. 자신과 비슷한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에게 이 편지가 닿아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희에게 보내는 감사도 감사하지만,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마음을 전해주셨다는 점이 감동적이었어요. 저희 단체에서는 성폭력 피해자와 가정폭력 피해자의 자조모임도 운영하고 있는데요. 모임에 참여한 분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응원과 지지를 볼 때도 보람을 느껴요. 저희가 그런 만남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과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활동가와 피해자, 지원자와 지원받는 사람이라는 관계를 넘어 차별적인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다시 만나는 것이잖아요. 저희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활동하고, 서로 연대하며 힘이 돼주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Q. 5년 넘게 활동가로 지내면서 개인적으로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 원래 제 성격은 내향적인 편이라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잘하지 못했어요. 활동가로 일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단체의 생각을 밖으로 전달해야 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말하고 나서는 힘도 조금씩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한결 여유로워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분노가 굉장히 컸어요. 문제 해결 방식도 정해진 답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활동을 해나가면서 피해자 상담이 쌓이고 함께하는 동료들을 만나면서 사람과 사건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한 방식만이 유일한 답은 아닐 수 있다는, 유연함도 많이 생겼고요.
Q. 앞으로 어떤 활동가가 되고 싶나요?
- ‘좋은 활동가’라는 말은 저에게 굉장히 이상향처럼 느껴져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활동가는 자기 삶에 솔직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현실의 삶 사이에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 모순을 부정하거나 감추기보다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향해 계속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다시 생각하고, 생각의 범위를 확장하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모순도 바라보고 받아들이면서 끝까지 배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 대구여성의전화를 소개할 때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곳이라고 많이 이야기합니다. 저희도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 가장 쉽고요. 하지만 피해를 경험한 사람을 나와 전혀 다른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같은 사회에서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어떤 면에서는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또 어떤 면에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상담하면서 피해자를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만 바라볼 때가 있어요. 자꾸 나와 다른 존재로 구분하고, ‘저 사람은 피해자니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저 자신에게도 계속 하는 말이지만, 서로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기대기만 하거나 도움을 주기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해요. 그런 마음으로 '대구여성의전화'를 찾아오고, 저희와 함께해 주시는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